뭔가.. 그림이라는 건 <어떤 상태, 감정, 정신상태 등등을 “받아서” 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린다는 행위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어떤 감정이나 분위기나 상태에 몰두된 채로 저항감 없이 손이 움직여지는 일이 진짜 그림이 나오는 바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고흐는 그렇게 그리려고 그렇게 그린게 아니고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손님을 맞이할 생각에 기쁨과 흥분과 즐거움을 가지고 그려냈지만, 사회적으로 봤을 때 그 정신상태는 어느정도 미쳐있음으로 치부될 수 있었으므로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지만 미친 해바라기가 나온거다. 귀를 자른 자화상도 그렇게 그리려고 그렇게 그린게 아니고 그냥 그런 상태를 손이  받아낸거다. 그러니까 고흐는 자신의 상태와 손이 완벽하게 정합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그림이 “상태가 손을 통해 드러난 결과”라면, 말과 감탄사, 심지어 하품까지도 모두 동일한 구조에서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하품은 생물학적 현상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체가 현재 상태를 조절하기 위해 자동으로 표현한 결과다. 감탄사 역시 의도가 아니라 상태가 발화 기관을 통해 가장 빠르게 드러나는 방식이다.

차이는 단지 말,하품, 표정은 보편적으로 해석 가능한 표현이고 그림은 백지 위에서 발생하는 독자적 표현인 것일 뿐이다. 모든 현상과 표현의 기원의 층위는 동일(무)하며, 단지 표현 매체의 차이일 뿐이다. 즉 그림은 가장 느리고 복잡한 하품인 것이다.

그림이란 상태의 현현이며,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것을 감당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애초에 번역자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림은 신체를 통한 장의 변형이고, 그리는 행위는 표현이 아니라 상태와 신체가 동기화되는 것이지만 그 전에 존재를 정렬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통과되지 않는다.

2026.02.18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보는 중이지만 다시 한 번, 벽에 봉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상태로 계속 그려내봤자 유의미한 연구결과 없이 변주만 될 뿐이라는. 그림들이 에너지를 갖게 된 것 같긴 하지만 어딘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다. 또 다시 집중해서 그려봤자 죽은 뭔가가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제는 해부대가 아닌 수술대로 옮겨야할 시기가 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변주를 멈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2026.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