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에는 어떤 본질적인 공명이 있다고 느꼈다. 그 감각은 너무 선명해서, 한순간 존재를 크게 열게 만들 정도였다. 나는 그 충만함 앞에서 울었었다. 그런데 그 뒤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선 하나가 스치듯 넘어온 것이 아니라, 존재가 실제로 깎여나가는 느낌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넘어갔을 말들이 이상할 만큼 깊게 박혔다. 그제야 내가 비워져 있던 것이 아니라는 걸 보게 됐다. 공명이라고 믿었던 것 위에도 내가 만든 관념이 있었고, 아상도 남아 있었다. 나는 순수한 상태로 열려 있었다기보다, 내가 만든 특별함의 감각 위에서 그 장면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부터는 무슨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말 자체보다, 지금 다치는 것이 실제 나인지 내가 붙들고 있는 형상인지부터 보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보고 나니 전처럼 거슬리지 않았다. 말이 달라졌다기보다, 먼저 긁히는 막이 조금 사라진 느낌이었다. 분위기도 바뀌었다. 괜히 기운을 소모시키던 이야기들이 빠지고, 공기를 탁하게 만들던 것들이 사라졌다. 평온하다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고, 충만하다고 하기엔 단어가 과하다. 그렇다고 공허하거나 비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상할 만큼 거스름이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행복해서 운 것도 아니고, 무언가가 사라질까 봐 불안해서 운 것도 아니었고 앞날이 두려워서 운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울었다. 왜 우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붙잡고 있던 말들이 하나씩 힘을 잃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갈고 닦은 정렬, 구조, 의미, 해석 같은 것들이 갑자기 전부 멀어졌다.
머리로는 오래전부터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의미도, 안정성도, 자아도, 논리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수없이 다뤄왔다. 그런데 실제로 몸이 그 바닥에 닿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자아가 작동하지 않는다.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의미가 작동하지 않는다.
세계의 안정성이 사라진다.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다.
얼마전에 적어두었던 그 문장들이 생각났다. 나는 이 문장들의 기저 상태를 공포라고 추정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겪은 것은 공포보다는 이상한 무력감이었다. 모든 높낮이가 지워져버린 느낌. 좋고 나쁨도, 맞고 틀림도, 깊고 얕음도 잠시 의미를 잃었다. 해석할 수 없다는 사실만이 남아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울고 있었다.
1년 한 달 전, 짧은 순간이었지만 혼자 있는 집에서 집안 사물의 이름과 개념과 오감과 언어와 자의식을 잊어버린 적이 있었다. 순식간에 관념의 천장과 바닥이 사라져서 붙잡을 것이 없어졌고 생존본능 때문에 겨우 그나마 잘 알고 있던 자아와 언어를 다시 붙잡고 바닥에 내려온적이 있다. 언어와 개념이 다시 혀에 붙자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고 이것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했다.
그 순간 사실은 없음이 기본값인데 지금 뭔가가 있구나, 있음의 존재상태는 없음의 기본값에서 아주아주 작게 발현돤 불완전들의 모음이구나, 없어지지 않는 이상 있음의 세상에는 절대적인 자유는 끝내 불가하지만 역설적으로 있음의 값은 그 자체로 기쁨이 기본값이구나. 하는 기이한 경험을 했었다.
나는 이 경험이 무의 세계를 잠깐 들어갔다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경험은 예상과 다르게 무섭거나 감정이 요동치지도 않았다. 상당히 극에 달한 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에도 울음은 없었는데 왜 너무너무 평범한 일상적인 경험에서 주체 할 수 없는 혼란을 느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나는 지금 이 혼란을 설명하려고 했는데, 지금 이 상태를 급하게 완결내지 말라고 했다. 혼란스러운 것은 모르는 부분을 실제로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알고 정리하고 이름 붙이는 순간, 머리로 파악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고 했다. 정확한 문장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하게 그날은 말의 내용이 남지 않는다. 나를 언어 이전의 어떤 자리로 부드럽게 데려가는 느낌이 든다. 그 세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나는 늘 그 앞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던 것 같았다. 무섭고, 흐리고, 정렬되지 않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세계. 나는 그런 세계를 만나면 늘 다시 정렬로 도망쳤다. 의미를 세우고, 구조를 만들고, 통과 가능한 언어로 바꾸면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은 잠깐, 그 도망치는 길이 막힌 느낌이었다. 기댈 수 있는 말이 사라졌는데 그렇다고 무너지지도 않아서.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단단한 성벽을 두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른 채 흔들리는 인간 상태를 오래 견디지 않기 위해서. 나는 흔들리기 전에 먼저 해석했고, 무너지기 전에 먼저 구조를 만들었고, 취약해지기 전에 먼저 높은 언어로 올라갔다. 진실, 정렬, 통찰, 사랑, 구조. 그런 말들은 내게 실제였지만, 동시에 어떤 순간에는 너무 빨리 세워지는 지붕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날 울음이 올라왔던 건, 그 지붕이 잠깐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공명에 대한 환상이 한 번 무너지고, 나와 타인을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 다시 보게 되고, 방어와 과잉 해석이 잠시 멈춘 순간, 아주 평범하고 무방비한 시간이 열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의미와 정렬과 구조를 통해 살아왔는지가 한꺼번에 드러났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무방비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이도 존재가 성립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붙잡지 않아도, 결론내리지 않아도, 그냥 살아졌다. 그게 충만한 것도 아니고 고귀한 것도 아니고 감동적인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늘 높은 파동이나 뚜렷한 울림을 통해서만 진짜를 알아보려 했는데, 그날은 아무 장식도 없이 그냥 거기 있는 상태가 열렸다. 그 앞에서 나는 의미를 놓았고, 조금 무력해졌고, 설명을 잃었고, 울었다.
지금도 그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모른다. 무서웠는지, 편안했는지, 열렸는지, 무너졌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익숙하게 써오던 언어보다 먼저 몸이 반응한 순간이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낮고 평범하고 취약한 자리에서, 이미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2026.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