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노래를 틀었다가 최근 학부 시절 그림을 그리던 감각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는 내가 긋는 선을 거의 의심하지 않았다. 어떤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손이 먼저 움직였고 그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화면 전체를 설계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가장 작은 단위 하나에서 시작해서 그 주변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방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생경한 감각을 찾고 싶었다. 선은 점점 가늘어졌고, 화면은 비워졌으며, 비정형의 추상적인 도형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공명은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소리가 없는데도 웅- 하는 진동이 들리는 듯한 그림들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잃었다.

학부 시절 그림에는 서툴고 거칠어도 구성과 사건이 있었다. 무언가가 생성되고, 변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반면 추상 작업에서는 분위기와 감응은 남았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존재로 끝내 내려오지 못했다.

한동안은 인터넷에서 발견한 이상한 이미지들의 일부를 차용해 그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감각을 여는 통로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요소들은 장식이 되었고 결국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최근에는 ‘사건’이라는 단어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사건은 영화적인 갈등이나 반전이 아니다. 존재가 자기 방식으로 시간을 살아가는 순간에 가깝다.

예를 들면 한여름 고속도로 다리 밑에 차를 세워 놓고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

누군가는 트렁크에 걸터앉아 사과를 깎아 먹고, 누군가는 돗자리를 펴고 TV를 보고, 누군가는 차 앞에 의자를 놓고 단소를 연습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다.

그 사람들이 특별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방식으로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내가 오래 좋아했던 장면들도 비슷했다.

거대한 드라마보다, 존재가 자기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장면.

아마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새로운 스타일이나 새로운 기법이 아니라 그런 장면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이 결국 내가 말하고 싶었던 ‘사건’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202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