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Z축과 시각언어: 회화와 애니메이션의 시간과 사건〉
최초의 질문은 거칠었다. 회화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동시적인 시간이 펼쳐져 있는데 왜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처럼 실제 시간이 흐르는 장르에서는 오히려 회화가 가진 시간성이 사라지는가. 어째서 멈춰 있는 회화에서는 시간이 두껍게 느껴지고, 선형적인 장르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이 질문은 너무 어려웠다. 솔직히 이렇게 문장으로 정리하지도 못할 수준으로 내가 뭐에 대해 그렇게 불만인지 정확히 말하기도 어려웠다. 무엇을 묻고 싶은지 몰라서 선형구조라는 이유 하나로 애꿎은 언어와 문자와 시계를 혐오하면서 회화 이외의 그 어떤 장르도 이 일을 해낼 수 없다며 주먹질을 해댔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시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시는 문자 언어를 쓰면서도 한 문장 안에 지나간 것과 오지 않은 것, 서로 다른 감각과 의미를 동시에 품을 수 있었고, 그 점에서 회화와 비슷한 가능성이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도 난 시인은 될 수 없었다.))
그 뒤로도 오랜 시간 동안 시간의 Z축이니 시각언어니 맘대로 이런저런 단어를 붙여가며 오래도 돌아다녔다.
이 질문에 답하고 싶어서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전공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모순적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최초의 질문은 2016년쯤이었고, 회화로서의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2019년쯤이었다.
그 이후 최초의 질문을 이해하려는 시도 중에 결국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오랫동안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시간에 대해 이해하는 그 골아픈 과정 중에 더 골치아픈 존재와 없음의 문제까지 내려갔고, 반대편인 손과 눈의 영역에서는 그림 하나가 어떻게 사건이 되는지, 삽화와 회화와 영화는 무엇이 다른지 같은 아주 작은 질문까지 내려갔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빙빙 돌고 나서야 내가 느꼈던 동시감은 회화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회화에서는 그것이 유난히 잘 보였을 뿐이었다.
한 장의 그림에는 현재의 순간과 직전의 움직임이 남아 있고, 사물의 기울기나 시선에는 다음 순간이 들어 있다. 실제로 그려진 것은 한 순간뿐인데 그 안에서 직전과 현재와 직후가 동시에 느껴진다. 멈춰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의 순간 안에 여러 시간이 압축되어 보인다.
반대로 애니메이션은 그 시간을 직접 펼쳐서 보여줄 수 있다. A를 보여주고 B를 보여준 다음 C를 보여준다. 과거와 미래를 실제 시간 속에서 순서대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B라는 한순간 안에는 A와 C가 없어도 된다.
내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은 움직임 자체가 아니라 아마 이쪽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앞으로 흘러가면서 앞의 시간이 사라지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다음 장면으로 미뤄지는 것.
그래서 실제 시간은 풍부한데 각각의 순간은 오히려 얇아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것은 애니메이션의 한계도, 회화만의 특권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매체가 멈춰 있는가 움직이는가가 아니라, 지금 보이는 하나의 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함께 존재하느냐였다.
삽화와 회화의 차이를 오래 고민했던 것도 결국 같은 문제였던 것 같다. 둘 다 어떤 이야기의 한 장면을 그릴 수 있다. 다만 이미지가 그 순간에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데 머무르면 시간 역시 그 장면에 붙들린다. 반대로 화면 속 몸짓과 시선, 무게, 빛, 묘사의 정도, 밀도, 분위기처럼 이미지를 이루는 작은 단위들이 서로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원래 이야기를 몰라도 그 안에서 무엇인가가 방금 지나갔고 무엇인가가 곧 일어날 것 같은 감각이 생긴다. 한순간이 더 이상 한순간으로 닫혀 있지 않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화면 내에서 서로 얼마나 풍부하게 관계되어 있는가에 따라 그림 안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것 같다.
(여기서 사건은 극적인 일이 벌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의 존재가 가지고 있던 어떤 성질이나 가능성이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작은 변화에 가깝다.)
오랫동안 ‘시간의 Z축’이라고 막연하게 부르던 것도 아마 이것이었던 것 같다.
한순간 안에 그 순간만 있지 않은 것.
지금 보이는 것 안에 방금 전의 것이 흔적으로 남아 있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이 가능성으로 이미 들어 있는 것.
=잠재태.
그래서 최근 작업에서는 회화를 움직이는 것보다, 움직임 속에서 한순간이 얇아지지 않게 하는 쪽에 더 관심이 간다. 앞에서 일어난 일이 다음 이미지에서 없어지지 않고, 하나의 변화가 다음 변화의 원인이 되며, 이전의 형태가 다음 형태 안에 흔적으로 남는 것. 그렇게 되면 시간은 A에서 B로, B에서 C로 앞으로 흘러가면서도 A가 B 안에 남고, A와 B가 다시 C 안에 남는다. 시간이 지나가는 동시에 쌓이는 것이다.
결국 10년 동안 찾던 것은 새로운 종류의 움직임도, 회화에만 존재하는 어떤 비밀스러운 성질도 아니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도 한순간 안에 시간의 두께를 잃지 않는 방법.
회화에서 처음 발견했던 진동을 회화의 바깥에서도 가능하게 하여 연속적으로 구체적으로 울리게 만드는 방법.
아마 내가 그렇게 오래 ‘시각언어’라고 부르며 찾아다녔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2026.8.14